시와 정서/환경

국사교육이절실한이유

zarashin 2006. 7. 29. 10:44
LONG 글의 나머지 부분을 쓰시면 됩니다. ARTICLE

 


한국사는 한국인이 자기를 찾는 공부이다. 현재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 속에서 역사전쟁이 시작되었다. 영화 괴물>과 <한반도>, 텔레비전 드라마인 <주몽>과 <연개소문>은 그것이 고대사든 근현대사든 한국이 처한 현실적 위기상황의 타개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동안 잃어버렸던 흥미로운 단서를 유발한다.

영화 < 괴물>은 미국을 은유화한 괴물의 실체를 통해 한-미 관계의 억압구조를 전달한다.

<한반도>는 한말 이래로 현재까지 뻗쳐오는 일본 식민주의자의 강압과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딜레마에 빠져 있는 한국의 정치현실을 재조명한다.

드라마 <주몽>과 <연개소문>은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는 억지스러운 역사관에 대항하여 현재 중국인들의 선조들과 현재 한국인의 조상들이 고대사 속에서 중원대륙을 놓고 쟁탈했던 족적을 복원함으로써 역사적 자긍심과 뿌리를 회복하고자 한다.

이들 극의 공통점은 한국이 현재 처한 정치적 불안의식에서 비롯되며 그 원인은 한국을 둘어싼 열강들의 국수주의적 재무장화에서 기인한다.

우린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국수주의가 제구구의로 발전하여 많은 민족을 억압한 사례를 알고 있다.

한국을 둘러 싼 열간의 국수주의적 징후는 한국을 위기로 몰아넣고 불안으로 치닫게 한다. 그들은 이미 한국을 자극하고 있고 한국은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미국이 자유무역협정 협상에서 보이는 모습과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교과서 왜곡 및 독도영유권 주장 등은 조금씩 경우는 다르지만 공통의 맥은 그들의 강한 국수주의적 행태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의식을 강하게 반영하는 것이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 속에 재현되는 역사찾기 혹은 역사 재교정 작업이다.

과연 한국은 무엇을 잃었으며 무엇을 찾아야 할 것인가. 이들 드라마들이 한결같이 외치는 것은 한국인은 누구이며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현대 한국은 물질적 안정 외엔 몰가치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가장 중요한 ‘얼’이 빠져 있어 외교관계에서도 약소국을 면치 못한다. 위당 정인보 선생이 말씀하신 ‘오천년 조선의 얼’이 빠져 있다. 그 실례가 현재 한국이 행하고 있는 국사교육의 실종이다.

대학입시에서 선택과목으로 전락했고 암기 사항이 너무 많아 선택마저 기피한다는 애물단지 국사교육의 현실을 보면 이 나라의 정책이 국민을 어떤 방향으로 몰고 가는지 자명해진다. 정치는 국민의 얼을 빼놓고 간다. 현재 시점에서 그나마 얼을 찾으려 노력하는 작업으로 평가해 준다면 바로 문화예술 작업밖에 없다. 시민들은 이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제도권 교육이 놓치고 있는 한국인의 얼에 대해 다소 흥미를 갖는 정도다.

가까운 아시아든 서구든 열강의 국수주의적 강압에 이미 지칠대로 지친 정부와 국민들에게 영화와 드라마가 외치는 한국인의 얼찾기는 정책을 통해 국사찾기 교육으로 보상되기를 희망한다. 한국사를 찾는 작업은 나를 찾는 일이며 결국 나라가 억울한 처지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첩경임을 위정자들은 왜 모르는 것일까. 영화나 드라마가 반영하는 현실이 한갓 오락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진지한 국사 공교육과 역사찾기 시민운동으로 성숙해질 수 있는 성찰의 계기로 승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1. 'Corea' 국호표기 이렇게 빼앗겼다


일제가 강요한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바뀐 지 10여년이 되었다. 1941년 2월 8일 일본 천황의 칙령으로 '황국신민(皇國臣民)'이 되라고 '국민학교'로 명칭이 바꾼 줄도 모르고 해방후 50여년 동안 그대로 사용해 왔다. 그 동안 일본이 우리를 어떻게 보았을까?

심지어는 일본 마저 1945년 이후 '소학교'로 바꾼 마당에 말이다. 중국과 북한도 함께 모두 '소학교'와 '인민학교'로 바꾸었는데 우리만이 그 동안 그대로 사용해 왔다. 그것도 친일파들의 철저한 보호 속에서. 1908년 제4차 런던 올림픽대회 때에 나라별 입장 순서에서 당시만 하더라도 C를 첫 자로 하는 국가가 없던 상황에서 일본은 Corea가 눈엣가시 같이 여겨져 영미계 학자들이나 선교사들을 동원하여 Korea로 바꾸기에 광분한다. 우리는 이 사실도 모르고 지금까지 지내왔다.

 

▲ 1794년 영국에서 발행된 '중국지도'(미국 남가주대 소장)에 동해가 'Sea of Corea'(지도 오른쪽 상단의 붉은 네모속)로 표기돼 있다.
 
ⓒ 독도박물관


그러면 명칭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공자는 논어에서 만사는 '이름을 바로 잡는 것 正名'이라고 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명예 名譽'에 살고 죽는다. 이름에 인간다운 운명을 건다는 뜻이다. 지금 미국을 보라. 이라크를 점령하자마자 공항과 거리 등 이름부터 바꾸기 시작하지 않는가?

일제는 강점을 하자마자 국호를 비롯해 지명과 나중에는 성씨 등 명칭부터 바꾸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제가 창씨개명을 그들 식민지 통치의 최대의 과제로 삼은 예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일제하면 창씨개명을 바로 연관시킬 정도이다. 그래서 이름과 명칭을 한갓 글자에 불과하다고 무시하면서 살아서는 안되며 더욱이 다음에 말하려고 하는 국호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먼저 우리나라 영문 국호는 1255년부터 1905년까지 거의 700년 동안 Korea가 아니고 Corea로 사용되었음을 지적해 둔다. '고려'에서 유래된 국호는 1255년 프랑스 선교사 류브류크가 몽골에 판견 되었다가 귀국하여 그의 여행기에서 중국 동쪽에 '까울레 Caule'라는 나라가 있다고 기록한 데서 외국어 국호가 알려졌다. 일제는 1870년대부터 친일적인 외국인들을 선동하여 Corea를 Korea로 바꾸기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1880년대에 들어와서는 Corea와 Korea가 공문서 속에 혼용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가 소위 C와 K 혼용 시기라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유럽권에서 영미권으로 대외 관계가 바뀌면서 생긴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음 자료들을 검토해 보면 국호 변경은 일제의 계획된 책략에 의한 것임이 방금 드러난다.

700년간 우리나라 국호는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영어, 화란어 등 어종에 상관없이 모두가 Corea로 표기되었다. 물론 Cores, Coray, Corie, Corey, Coeree로 표기상에 차이는 있었지만 첫 자가 C로 시작하는 데는 그 어디에도 차이가 없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Korea라고 한 곳은 없었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하멜 표류기>에도 Coeree로 표기돼 있다. 심지어는 영어자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영국 지리학자 리챠드 해클류트도 그의 항해서 'Principle Navigation'에서 우리 국호를 Coray라고 했다.

그는 이 책에서 포르투갈인들이 Coria라고 적고 있다고 까지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어권으로 넘어 오면서 Corea가 Korea로 자연스럽게 변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앞으로 Corea 국호 변경 반대에 가장 앞장 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 말 국호가 '조선'에서 '대한'으로 바뀌었는 데도 외국어 표기는 그대로 'Corea'였음은 이미 이 명칭이 대외적으로 고정돼 있었음을 의미한다. 1897년 문서에는 '조선: Corea'라고 표기할 정도이다. 1900년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 박람회 참가 시에도 Corea란 명칭을 사용했었다.

1905년 일제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마자 대외관계문서는 물론 대내외공개 문서인 <관보>에 이르기까지 'Korea'를 사용하고 있다. 그들이 얼마나 명칭에 신경을 쓰고 있었는가는 을사조약 그 다음 날부터 '대한제국'이란 명칭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으며, 심지어는 '한'자가 들어가는 모든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예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1909년 10월 이또가 안중근 의사에 의해 피살당하자 Corea를 완전히 말살하고 만다.

드디어
1910년 한일합방 조약이후부터는 우리나라 국호를 완전히 무시하여 초대 조선 총독이던 데라우치는 국호문제에 관하여 이완용 등에게 '병합하는 마당에 국호는 무슨 국호인가'라고 폭언까지 했다. 드디어 8월 29일 합방이 선언되기 전 8월 21일에 칙령 318을 통해 세계 열강들에게 국호를 Korea로 표기하도록 알린다.

이렇게 철저하게 바꾸어 버린 우리의 국호를 그렇게 된 사실 마저 모르고 살고 있는 우리들 자신들이 모멸스럽지 않는가? 실로 '국호표기날조'는 '민족어 말살참극' '창씨개명책동'과 함께 언어학 부분에서 감행한 역사적인 3대 범죄행위라고 할 수 있다.

2. 미국 선교사들도 국호 변경에 일제를 도왔다.

우리는 여기서 일제의 국호 변경이 의도적이었음을 친일적인 서양 저술가들과 선교사들에 대한 집중 공략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864년부터 일본에서 근무하였고 1880년에는 요꼬하마 영사, 그리고 1884년부터는 조선의 영국 총영사를 지낸 바 있는 윌리엄 아스톤의 행각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일제의 조선 침략에 정신적 지주 노릇을 하던 인물이다. 1878년부터 그가 기고한 글에서는 모두 'Korea'를 사용하고 있다. 4건의 그의 저작 속에서 우리는 Corea를 발견할 수 없다. 그가 1884년 일본에서 활동을 한 것으로 보아서도 그가 일본의 책동에 동조하여 Korea를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고 본다.

19세기 말 일제는 프랑스의 국제적 지위가 약화되는 것을 틈타기 시작한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프랑스어를 배제하려는 운동의 낌새를 알고는 일본을 경유하여 조선을 아는 영국과 미국인들에게 Korea를 사용하도록 음모를 꾸몄음은 자명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스톤이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국과 영국이 동맹하여 이라크를 침공한 데 대하여 독일과 프랑스가 이를 반대한 것과 국제 정세는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갖게 하며, 그런 의미에서 Corea 찾기 운동은 절체 절명의 과제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1870년에 아스톤의 글을 비롯하여 영미 계통의 맥이 닿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Korea를 선호하고 있다. 미국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1889), 힐버트(1892), 게일(1897), 아펜셀라(1895-1897) 등 미국계 선교사들은 모두 혼용 혹은 Korea를 사용하고 있다. 이들이 Korea를 선호하는 것은 90% 이상의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쯤 되면 국호 변경은 예나 지금이나 일본과 영미가 합작하는 정치적 음모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실로 이렇게 진행된 Corea 파괴 작전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1950년 한국 전쟁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Korea는 분단국가, 빈곤국가, 비도덕적인 국가 등으로 알려지게 되어 지금은 불명예와 상처투성인 것이 사실이다.

3. Korea로 분단된 조국 Corea로 통일하자

Corea 되찾기 운동은 한 갓 국호 명칭 회복 차원의 문제만은 아님이 분명하다. Korea는 일제의 식민지화와 미국에 의한 분단의 상징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 독재 정권에 의해 Korea Gate 등 온갖 흉물스런 오명의 상징이 Korea다. 작년 월드컵시 우리는 붉은 악마에 의해 우리의 국호가 Corea임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작년 후반기에 북측에서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공동연구할 것을 제의해 왔고, 금년 3월 1일에는 북측 학자들 10명이 소위 CK 문제에 관한 논문을 작성하여 우리에게 그 원고를 넘겨 주었다. 북측의 연구는 지금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그러나 남측에서도 이미 말 한대로 붉은 악마들이 앞장서 Corea 되찾기 운동을 전자 신문 등을 통해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학생 단체로는 한총련, 그리고 한국청년단체협의회가 연구와 운동 차원을 겸한 활동을 하고 있다. 고려대학교에서는 금년에 총학생회 회장 출마 후보가 학교 이름을 Corea로 바꿀 것을 선거 공약으로 제시할 정도이다.

남측 학술단체로는 통일연대 학술위원회(공동회장 조영건, 김상일, 강정구)가 교수들 중심으로 연구를 하고 있으며, 2004년 4월 25일 오후 2시부터 국가인권회관(서울 무교동 소재)에서 서굉일 한신대 국사학과 교수가 발표회를 가졌다. 4월 18일에는 사당동 한신대 분교에서 김상일 한신대 교수, 민경우 통일연대 사무처장, 박종홍 한청 부의장, 유뉴스 대표 등이 모여 'Corea 국호 되찾기 운동협의회'(가칭)를 발족하였다.

6.15 그리고 8.15 행사들에서 국호 되찾기 문제로 남북이 힘을 모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호 되찾기 문제는 일제의 문화재 강탈과 강제 징용과 함께 민족의 공분을 자아내게 하는 것인 만큼 그냥 두고 넘어 갈 수 없다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의지가 아닌가 한다.

앞으로 국민여론 확산, 공청회, 여론조사, 국회 통과 등 어려운 일들이 산적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각계 각층의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그러나 초등학교 명칭 변경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친일 친미 수구, 그리고 반통일 세력들이 만만치 않게 저항할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일제의 음모에 의해 국호가 강탈당한 것이 국민들 속에 알려질 때에는 Corea 되찾기는 시간 문제일 것으로 낙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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